▲ 아내 이영미 씨와 김학열 씨 |
올해 초 어느 날 횡성희망신문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그는 갑천면에 거주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본인이 쓴 글을 희망신문에 실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희망신문에 <텃세>와 <검정고무신>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독자의 글]을 기고했던 사람이 김학열 씨다.<관련 글 2015년 2월 23일, 3월 23일자 참조>
그리고는 5월의 어느 날, 신문사 사무실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정신이 남다르고 깨끗한 사람이 있다.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사람이다. 도시에서 온 자연인이다”며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제보자가 소개한 사람도 김학열 씨였다.
20년간 준비한 시골로의 이주
김학열 씨는 경기도 출신으로 서울서 살다가 2001년에 횡성으로 이주한, 이른바 ‘귀촌인’이다. 갑천면 하대리 ‘홀로세 곤충학교’ 인근의 산자락에 집을 짓고 부인과 단둘이 생활을 하는 김학열 씨는 이미 20대가 되기 전부터 “40세가 되면 무조건 시골로 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생을 계획해 왔다고 한다.
목표를 향한 그의 준비과정을 들어보면, 그의 뜻이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했는지가 드러난다. 전기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술, 담배, 다방 한번 경험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돈을 저축했고, 횡성 일대를 찾아다니며 이곳저곳 땅을 조금씩 사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서 모은 땅은 전답 4천평 정도에 임야 6천평 가까이. 횡성을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면서도 땅값이 저렴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서른아홉살이 됐을 때, 서울을 떠나 갑천면으로 오게 됐고, 농가주택을 얻어 지내다 2009년에 아내가 원하는 장소인 하대리에 집을 짓게 됐다고 한다.
왜 그렇게 ‘시골생활’을 원했는지에 대해, 김학열 씨가 내놓은 답변은 이랬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밥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도시에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요.”
▲ 김학열 씨가 혼자 힘으로 짓고 있는 이른바 ‘힐링용 주택’. 8평 규모의 여러개의 방으로 나누어 지을 집이라고 한다. |
김학열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뿐 아니라, 실제로 보기에도 부부의 생활은 매우 여유롭다. 물질적 풍부함보다도 생활을 누리는 태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아내는 아침식사를 마치면 두세 시간 가량 인근 산길로 산보를 다녀오고, 오후에는 집안일을 한다. 젊어서부터 재봉을 해온데다 염색도 할 줄 아는 아내는 웬만한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데, 최근에는 횡성군립도서관에 다니며 수놓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일은 틈나는 대로 집을 짓는 것이다. 김학열 씨의 계획 중 하나는 본인 소유의 땅 위에 ‘힐링용 주택’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것인데, 김 씨는 현재 혼자 힘으로 그 주택을 짓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 부부는 1년에 절반 가까운 날들을 전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보낸다고 했다.
이쯤 되면 부부가 벌어놓은 돈이 많아 놀면서 사는 것으로 오해할 만한데, 김학열 씨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첫째는 ‘쓰는 돈’이 별로 없다는 것. 둘째는 ‘고정소득’이 있다는 것이다. 김학열 씨는 횡성에 올 즈음부터 청일면에 위치한 한 연수원(회사 소유)의 건축과 관리를 맡게 됐고, 지금도 연수원을 관리해주면서 일정한 소득을 얻는다고 했다. 힐링용 주택사업을 준비 중이지만, “언젠가 돈이 떨어져 땅을 팔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김학열 씨 부부에게는 중요한 생활신조가 있다. ‘남 욕하지 않기’와 ‘잘난 척 하지 않기’란다. 의견이 다르거나 누군가가 욕을 하는 경우엔, 그냥 ‘아니구나’ 하고 물러섬으로써 갈등을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것이 전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게 또 한편의 김학열 씨의 생각이다. 타인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면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란다. 한편으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도 부부의 일상에 속하는데, 김학열 씨는 “마을의 공동작업, 부역에는 절대 빠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생활해 왔다”고 한다. 김학열 씨가 스스로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일은 마을의 반장을 맡게 된 것인데, 이웃들이 그에게 반장의 직을 맡긴 것은 그동안 부부가 보여 온 모습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 김학열 씨는 글을 쓴다. 그가 펴낸 산문집들 |
김학열 씨 부부는 인생의 분명한 목적지로서 횡성에 왔고, 나름의 원칙과 방법을 통해 횡성에 안착했다. 젊어서부터 낭비하지 않고 준비해 왔던 결과, 지금은 횡성을 여유롭게 즐기는 한편,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횡성을 계획하고 있다. ‘귀촌인’으로 불리기보다는 ‘횡성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이창조 기자]
이창조 기자 redfrog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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